🌈#9. 슬픈 장례가 아닌 '소풍'이 되기까지

장례 용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2025. 2. 21.

반려동물의 간식이나 장난감, 옷 같은 물건은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존재이지만 단 한 번 사용되는 장례 용품은 참 낯설기만 할 거예요.21그램의 수많은 목표 중 하나는, 오직 21그램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시그니처 용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일이에요. 21그램에서의 시간은 이 생에서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시간이기에 최대한 후회 없는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고 싶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오늘은 장례 용품을 기획하고,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21그램 운영 기획팀의 정솔비(헤일리)팀장님이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Q. 헤일리님을 소개해 주세요. 😊

A.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21그램에서 서비스 운영 기획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호자님과 아이의 마지막 인사 시간이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 있도록, 서비스나 용품을 기획하고 개선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Q. 어떤 계기로 '이별'을 다루는 일을 하게 되셨나요?

A. 2018년 어느 날, 오랜 고민 끝에 털이 새하얘서 마치 작은 휴지 조각처럼 보였던 말티즈 한 마리를 가족으로 맞이했어요. 이름은 ‘콩자’. 처음엔 그저 '우리 집에 머무는 작은 존재'였지만 함께한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콩자는 단순히 반려견이 아닌 어느새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진짜 가족, 소중한 내 동생이 되었어요.

그러다 문득 언젠가 '콩자는 나보다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텐데.. 그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에 반려동물이 떠났을 때 조치 방법을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허용된 방법은 3가지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첫째, 종량제 봉투에 담아 일반폐기물로 처리하는 것.
둘째, 의료폐기물로 분류해 수거하는 것.
셋째,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는 것.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어요. 평생을 함께하며 웃고 울던 가족을, 사랑하는 아이를 그저 '폐기물'이라는 차가운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거든요. 그래서 모든 반려동물이 마지막 순간까지 따스한 배웅을 받길 바라게 되었고, 후회 없는 작별을 직접 전해주기 위해 이 일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그렇게 4년이 흘렀고, 지금도 여전히 보호자님들께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실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장례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순간도 소홀히 준비할 수 없기에 장례 서비스나 용품을 새로 도입하는 과정도 굉장히 까다로운데요. 오늘은 최근에 새로 런칭한 '프리미엄 소풍 장례'를 기획할 때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고객의 용기 있는 한마디가 만든 서비스

프리미엄 소풍 장례의 시작은 정말 맨땅에 헤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어요. 막연히 '기존 프리미엄 장례를 더 프리미엄처럼 만들자!'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수많은 고민을 하게 만들었고, 저는 '프리미엄 다운 프리미엄 서비스는 과연 어떤 걸까?', '보호자님들이 가장 원하는 서비스는 무엇일까?'에 집중해 보았어요.

그래서 어떻게 '소풍'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게 됐는지 궁금하시죠? (하하)

난항을 겪고 있던 어느 날, 21그램에서 장례를 진행하셨던 보호자님으로부터 연락 한통이 도착했어요. 메시지에는 감사 인사와 더불어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꽃다발을 추가해서 아이의 주변을 꾸며주었지만, 제가 바랐던 것만큼 들판에 누워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엔 부족했어요. 아이가 더 편안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어요."

보호자님께서 전해주신 소중한 의견을 보고 저는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그래! 말로만 소풍이 아닌, 진짜 들판에 누워있는 모습처럼 소풍을 보내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장례 절차가 마냥 슬프고 고통스럽기 보다는 아주 조금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이 자리를 빌어 용기 내어 의견 주셨던 보호자님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소풍을 나타내기까지

소풍이라는 단어를 보고 가장 처음 떠오르는 건 어떤 장면인가요? 저는 푸른 잔디와 들꽃이 만개한 곳에 돗자리를 깔고 맛있는 간식을 먹는 여유로운 장면이 연상됩니다. 딱, 소풍 장례도 그런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그럼 우리 아이가 예쁜 추억, 맛있는 간식, 행복했던 기억을 모두 챙겨갈 수 있도록, 봇짐 형태의 가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첫 번째 구성품인 '소풍 가방'이 탄생했어요! '조금만 더 다듬으면 더 예쁜 모습이 될 것 같은데...' 디자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수정이 있었지만 최종 결과물을 받아든 순간, 진짜 소풍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고, 저뿐만 아니라 21그램 임직원 모두가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답니다.

그리고 소풍 장례의 하이라이트!

가장 소풍다운 느낌을 완성할 요소는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바로 푸른 잔디와 들꽃이죠. '잔디를 닮은 풀을 사용하면 되겠지?'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어요. 잔디처럼 초록색을 띠는 녹색 잎은 화장을 했을 때 재가 그대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화장 후 재가 남게 되면 아이의 유골에 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21그램에서 준비하는 모든 장례 용품은 철저한 테스트를 거쳐 재가 남지 않는 자재로 선정됩니다. 소풍 장례 또한 예외가 아니었죠! 그래서 세상에 풀이란 풀은 모두 화장해 보았다고 할 정도로 테스트 기간이 매우 길었어요. 하지만 결국 제가 이겼어요.✌

잔디를 형상화하기 위해선 고급 색 한지를 특별 제작하여 싱그러운 녹색을 더하고, 재가 남지 않는 들꽃과 소재를 찾아 아이의 주변을 드넓은 들판처럼 풍성하게 채웠습니다. 마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꽃들이 아이 곁에 자라난 것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풍의 한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이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장례가 그저 슬픈 추억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어요.

21그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마냥 슬픈 추억이진 않기를, 오래도록 기억될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어딘가 아름다운 곳으로 소풍을 떠나는 것이구나 하고 잠시나마 안심할 수 있도록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 순간 정성껏 준비했어요. 그렇게 런칭한 소풍 장례! 참 예쁘죠?

Q. 마지막으로, 장례를 경험하신 보호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이별은 언제나 너무 빠르고 사랑은 언제나 모자라기만 합니다. 함께한 날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 일상이 얼마나 예뻤는지 같은 반려인으로서 깊이 공감하고 있어요. 보호자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했고, 끝까지 함께했으며, 무엇보다 끝까지 책임졌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보호자님은 아이에게 누구보다 따뜻한 선물, ‘가족’이었을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다는 건 너무나도 아프고 어려운 일이지만, 부디 스스로를 위로해 주세요. 보호자님께서 흘린 눈물과 보내온 사랑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아이에겐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탓하지 마시고,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들을 사랑으로 꾹꾹 눌러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보호자님의 깊은 슬픔을 조용히 위로하며,
그리고 보호자님의 따뜻한 사랑을 깊이 존경하며.

- 21그램 운영기획팀 팀장 정솔비 올림